영화 ‘느티나무 아래’는 충북 괴산 우리씨앗농장에서 토종 씨앗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사계절을 통해 환경, 생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는 다큐멘터리다. 오정훈 감독의 2022년 다큐멘터리 영화 느티나무 아래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농업 환경과 산업화된 식량 시스템의 흐름 속에서, 고집스럽고 묵묵히 토종 씨앗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영화의 무대는 충청북도 괴산에 위치한 ‘우리 씨앗농장’. 이곳에서 농부들은 계절의 리듬에 몸을 맡기며 씨앗을 심고, 거두고, 다시 남긴다. 영화는 거창한 주장이나 극적인 사건 대신, 반복되는 일상과 느린 노동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잊고 지내온 ‘먹거리의 시작’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1. 토종 씨앗의 의미 — 생명을 이어주는 기억의 저장고
느티나무 아래가 가장 먼저 조명하는 것은 ‘씨앗’의 의미다. 우리는 수 많은 씨앗을 먹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밥도 '벼'라는 씨앗이고 콩, 깨 등 곡식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영화 속 농부들에게 씨앗은 단순한 농산물의 출발점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한 지역의 기후와 토양, 사람의 손길에 적응해 온 생명의 기록이다. 토종 씨앗은 동일한 품종이 대량 생산되는 개량종과 달리, 환경 변화에 강하고 다양성을 품고 있다. 영화는 토종 씨앗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생산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농업 시스템 속에서, 토종 씨앗은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밀려 나왔다. 그러나 감독은 농부들의 말과 손짓, 씨앗을 고르는 장면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효율만이 농업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농부들은 씨앗을 고르고, 말리고, 보관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기억을 이어가는 행위다. 어떤 씨앗은 특정 해의 가뭄을 견뎌냈고, 어떤 씨앗은 병충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씨앗 하나하나에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느티나무 아래는 씨앗을 ‘생존의 기술’이자 ‘공동체의 역사’로 바라보게 만든다.
2. 사계절의 리듬 — 제철 농사가 만드는 삶의 속도
영화는 사계절의 흐름을 따라 바쁜 농부들의 일상을 차분히 기록한다. 봄에는 씨앗을 고르고 밭을 준비하며, 여름에는 작물과 함께 자라는 잡초와 벌레를 감내한다. 가을에는 수확의 기쁨과 함께 다음 해를 위한 씨앗을 남기고, 겨울에는 지난 농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계절을 준비한다. 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영화는 ‘제철 농사’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제철 농사는 자연의 속도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영화 속 농부들은 계절을 앞당기거나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날씨와 땅의 상태를 관찰하며, 기다림을 선택한다. 이는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시간 감각과는 정반대에 있다. 느티나무 아래는 이러한 느린 리듬이 오히려 지속 가능한 삶의 조건임을 보여준다. 감독은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농부들은 자연을 통제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흐름에 참여하는 존재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다리고,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가 오면 그에 맞춰 방식을 바꾼다. 이 유연함은 자연과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이를 설명하지 않고, 풍경과 노동의 반복을 통해 관객이 체감하도록 만든다.
3. 느티나무 아래에서 배우는 생존 — 농부들의 철학
영화 제목인 느티나무 아래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중심이 되어온 존재다. 영화 속 농부들에게도 이 나무는 쉼터이자 사유의 공간이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씨앗 이야기를 나누고, 농사의 어려움을 공유하며, 다음 세대를 고민한다. 느티나무 아래는 농부들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겪는 어려움과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고단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를 차분히 따라간다. 그것은 단순히 농사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거리의 주권과 생존의 방식을 지키기 위함이다. 농부들은 말한다. 씨앗을 잃으면 선택권도 잃는다고. 특정 기업의 종자에 의존하게 될수록, 농부는 농사의 주인이 아니라 소비자가 된다. 이 메시지는 농업을 넘어 우리의 삶 전반에 적용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택을 외부의 시스템에 맡기고 있는가. 영화는 농부들의 삶을 통해 자립과 공존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다시 꺼내 보인다. 느티나무 아래는 거대한 환경 담론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땅을 만지는 손, 씨앗을 담는 작은 봉투, 계절을 기다리는 침묵을 통해 말한다. 이 조용한 태도는 오히려 더 깊은 설득력을 지닌다. 영화 느티나무 아래는 토종 씨앗을 지키는 농부들의 사계절을 통해 환경과 생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는 다큐멘터리다. 느린 농사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삶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농촌의 기록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산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느리게 얻어지는 것들을 답답해 하고 빨리 뭔가를 얻으려 하는 오늘날, 세대를 이어 전해질 생명과 직결된 씨앗에 대한 농부들의 철학이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