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저마다 믿는 신이 있다. 없는 이들도 많지만 다양한 종교들 중 자신만의 종교를 만들어 그 신을 숭배하고 따르며 안식을 얻기도 한다. '신'은 보이지 않은 세계이면서도 인간들 사이에서의 그 영향력이 크고 우리 삶에 미치는 범위도 다양하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티벳 불교 고승의 환생으로 인정받은 아홉 살 소년 앙뚜와 노승 우르갼이 전생의 고향 티벳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통해 믿음과 사랑, 삶의 의미를 묻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1. 린포체 앙뚜 — 한 아이에게 주어진 운명
인류가 믿는 종교 중 불교는 석가모니를 숭배한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티벳 불교 고승의 환생자로 인정받은 아홉 살 소년 앙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린포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이미 하나의 상징이자 중요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영화는 앙뚜를 신격화 하며 높이고 신비화하기보다, 그가 여전히 웃고 뛰노는 평범한 아이임을 먼저 보여준다. 이 대비는 관객에게 한 아이에게 부여된 종교적 운명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앙뚜는 자신이 매우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의 많은 기대와 전통 속에서 자라난다. 영화는 그 아이의 시각과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환생이라는 개념이 신앙의 언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로 작용하는 과정을 조용하고 담담하게 포착한다. 앙뚜의 표정과 침묵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티벳 불교 고승의 환생자로 인정받은 어린 앙뚜, 그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그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받아 들이며 성장하게 될 모습을 어떤 관점으로 보여줄지 기대 된다.
2. 우르갼 스님 — 동행자의 믿음과 사랑
어린 소년에 불과한 앙뚜의 곁에는 60년의 세월을 산 노승 우르갼이 있다. 그는 앙뚜의 보호자이자 스승이며, 무엇보다 앙뚜가 성장하여 커가는 것을 함께 하는 삶의 동반자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위계적인 사제 관계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애정, 그리고 드러내지 않지만 깊고 묵묵한 책임감이 중심이 된다. 우르갼 스님은 앙뚜를 가르치기보다 기다린다. 아이가 스스로 느끼고 받아들일 시간을 존중하며, 전생과 현생을 잇는 다리가 되어준다. 이들의 관계는 나이와 역할을 초월해,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조용한 유대를 통해, 종교적 전통이 인간적인 돌봄 위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티벳으로 향하는 길 — 전생과 현생의 만남
영화의 중심에는 인도 북부 라다크에서 티벳으로 향하는 여정이 놓여 있다. 이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전생의 고향을 향한 영적 귀환이다. 험난한 산길과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앙뚜와 우르갼은 각자의 방식으로 길을 받아들인다. 아이에게는 낯선 여행이지만, 노승에게는 오랜 기다림 끝의 순례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이 여정을 통해 환생이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걷고, 쉬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 속에서 삶이 이어진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카메라는 웅장한 자연과 두 인물의 작은 몸짓을 대비시키며, 인간의 삶이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깊은지를 드러낸다.
이 영화는 결국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을 잇는 일인가, 관계를 이어가는 일인가. 앙뚜와 우르갼의 여정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조용히 남는다.
결론: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환생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통해 인간의 믿음, 사랑, 그리고 동행의 의미를 사유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삶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지금 곁에 있는 존재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