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개봉한 한국 범죄 스릴러 영화 ‘더 킬러스’는 연쇄살인과 음모, 인간의 이면을 치밀하게 파고든 장르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 주요 인물, 스릴러적 장르 특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분석합니다.
냉정하게 구성된 ‘더 킬러스’의 줄거리와 서사 구조
‘더 킬러스’는 2024년 10월에 개봉한 후, 기존 한국 범죄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관객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영화는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익숙한 틀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관통하는 냉소적인 시선과 사회적 풍자가 인상적입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쫓는 형사와 진실을 숨기려는 세력 간의 숨 막히는 대립.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범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넘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중심에 둡니다. 이야기는 형사 ‘한재윤(이병헌 분)’이 어느 날 의문의 살인 사건 현장에 호출되며 시작됩니다. 피해자는 서울 강북권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하부 조직의 보스. 그는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현장에는 범인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이 시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유사한 방식의 살인사건이 3건이나 있었던 것. 경찰 내부에서도 수사 혼선이 발생하고, 언론에서는 조직 간 보복설을 제기하며 대중의 불안을 부추깁니다. 재윤은 과거 조직폭력 전담반 소속이었고, 이전에 미해결 된 ‘선릉교 살인사건’에서 실패한 전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에 누구보다 집요하게 접근하고, 단서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의 수사는 철저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적으로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피해자들 중 한 명이 과거 자신의 정보원이자 친구였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그는 점점 이 사건에 빠져듭니다. 결국 영화는 단순한 연쇄살인 수사극이 아니라, 한 형사가 과거와 현재, 정의와 타협 사이에서 흔들리는 심리를 다룬 작품으로 확장됩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재윤은 단순한 형사가 아닌, 이 사건의 한 축을 이루는 과거의 인물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과거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모호한 중개자의 역할을 하며 내부 정보를 넘기기도 했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더 킬러스’는 단순히 범인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정의와 책임, 기억과 죄책감이라는 테마를 관통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재윤이 자신이 직접 체포해야 할 마지막 대상이 자신일 수도 있다는 듯한 암시를 남기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입체적인 인물 구성 –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더 킬러스’는 그 어떤 캐릭터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중심에 있는 한재윤 형사부터,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 각자의 사연과 동기를 지닌 입체적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히어로나 빌런 구조를 거부하며,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재윤은 외형상으로는 냉정하고 프로페셔널한 형사지만, 그가 짊어진 과거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형사로서의 명분 뒤에는 정보 거래, 협박, 묵인 같은 회색 지대가 존재하며, 이는 그가 사건을 파헤치면 할수록 더욱 뚜렷해집니다. 그의 도덕성은 사건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관객은 재윤을 단순한 주인공으로 보기 어렵게 됩니다. 한편, 영화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인 ‘정혜린(전여빈 분)’은 살해된 조직 보스의 딸이자, 현재는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개인적인 복수로 풀려 하지 않고, 진실을 찾으려는 내면의 갈등에 사로잡힌 인물입니다. 그녀의 등장은 영화에 감정적인 층위를 더하고, 재윤과의 관계에서도 복잡한 심리전을 형성합니다. 조직 내 생존을 위해 범죄에 가담하는 인물들 역시 단순히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들 또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혹은 더 이상 벗어날 수 없기에 범죄의 굴레를 반복하는 존재들입니다. 영화는 이들의 사연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범죄의 이면에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더 킬러스’는 명확한 주인공-악당 구도를 의도적으로 흐림으로써, 관객에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믿었던 정의는 누구의 입장에서 정의이며, 누군가를 처벌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영화는 끊임없이 제기합니다.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진화 – 연출, 메시지, 장르의 힘
‘더 킬러스’는 스릴러 장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외피 안에 수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형 장르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와 인간을 성찰하는 통로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연출 면에서 ‘더 킬러스’는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카메라 움직임, 묵직한 색감, 절제된 음악 사용 등으로 분위기를 정교하게 완성합니다. 특히 살인 장면이나 추격 장면에서의 카메라 워크는 관객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며, 동시에 정적인 장면에서는 침묵의 무게감을 부각시켜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킵니다. 시나리오는 매우 치밀하며, 모든 인물의 행동에 설득력 있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서브플롯 없이도 밀도 높은 전개를 유지하면서도, 인물의 감정 변화와 드라마적 깊이를 잃지 않는 점은 이 영화의 큰 강점입니다. 특히, 과거 회상 장면과 현재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플래시백 구성은 사건의 퍼즐을 천천히 맞춰가는 재미를 줍니다. 메시지 면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루며, 사회 속에서의 권력, 책임,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악에 대해 조명합니다. 경찰조직 내부의 침묵과 언론의 선정성,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피로한 무관심 속에서 사건은 더욱 비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실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반영하면서 관객에게 더욱 현실적인 공포감을 안겨줍니다. 음악과 음향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통제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비명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이 영화가 단순한 자극물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때로는 전혀 음악이 없는 장면이 오히려 가장 무섭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더 킬러스’는 한국 범죄 영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깊은 몰입을 유도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남기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장르적 진화의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더 킬러스’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한국 사회와 인간 내면을 날카롭게 해부한 심리 드라마입니다. 형사와 범죄자, 진실과 책임, 정의와 타협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깊은 몰입과 긴 여운을 선사합니다. 장르와 메시지를 모두 잡은 수작으로, 2024년 하반기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기에 충분합니다.